[제184호] 국제경제학과 80학번들의“질비오게젤연구모임”

작성자 정보

  • 편집부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7c1e4cedae0dd5436c9302adec2b11e0_1643963535_4328.JPG

자유토지·자유화폐 이론에 심취, 현 자본주의경제제도에 대한 비판적 대안 모색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정부는 여러 차례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재난지원금은 한시적이어서 사용기간이 지나면 국고로 환수된다. 소비 진작에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쓰는 돈이 이런 시한부 화폐라면, 즉 일정시점이 지나면 가치가 없어지는 화폐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약 100년 전 독일의 경제학자 질비오 게젤(1862-1930)은 이런 화폐를 ‘자유화폐’라는 이름으로 제안했다. 자유화폐는 매주 액면가의 0.1%씩 그 가치가 줄어든다. 매주 0.1%에 해당하는 우표를 사서 붙여야 돈을 액면대로 쓸 수 있다. 돈의 가치하락을 피하려면 그 돈으로 물건을 바로바로 구매하거나 빚을 갚거나 은행에 예금을 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늘 무엇엔가 사용해야 하는 압력을 받으니, 돈의 특권을 잃고 재화와 동등하게 되는 화폐가 썩는 화폐, 즉 자유화폐다.

또 그는 이 지구의 모든 땅은 인종이나 계급, 능력에 관계 없이 모두가 동등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개인 소유 토지를 시가대로 국채를 발행하여 매입한 뒤 그 토지를 임대하여 나오는 임대료로 국채 이자를 지급하는 제도를 구상했다. 이러한 토지를 자유토지라 한다. 


이와 같은 게젤의 사상에 심취한 동문들이 있다. 국제경제학과 80학번 6명이다. 이들은 그의 저서를 함께 읽고 공부하다가, 그의 사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질비오게젤연구모임’을 만들어 이번에 번역서를 출간했다. 책의 내용이 방대하고, 꽤 어려워서 번역서보다 입문서를 먼저 낼까도 생각했으나 일단 게젤과 그의 원전이 널리 회자되어야 입문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여 번역서를 먼저 냈다고 한다. 


번역한 동문 중 김상현은 미국 미시간주립대학 MBA출신으로 SK그룹 등에서 일하다 현재는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이사장과 서울협동조합협의회 회장으로 있다. 김석규는 서울대국제경제학대학원을 졸업하고, 교보투자신탁과 GS자산운용의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류재상은 제일기획에서 일했고 지금은 화원(일상첨화)을 운영한다. 유종오는 공인회계사(인성회계법인 부대표)로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 자문위원,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감사 등으로 일하고 있다. 이헌섭은 SK그룹에 근무한 후 한국방송대일본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인천대 전문교수, (사)아름다운서당 교수를 겸하고 있다. 정택환은 서울대경영대학원과 일본 히토쓰 바시대학원 경영학 석사로 SK그룹에서 일했다.


‘질비오게젤연구모임’의 한 사람인 유종오 부대표를 만나 모임을 만들게 된 배경과 책 내용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 연구모임을 만든 배경은.

구성원은 모두 국제경제학과 80학번 동기들이다. 대부분 은퇴하고 일부만 직장을 다니고 있다. 약 5년 전 어느 날 한 친구가 사회과학공부를 같이 해보자고 하여 한 달에 한 번씩 책을 읽고 토론을 했다.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 등 자본주의 경제의 문제와 대안을 다룬 책을 읽었다. <진보와 빈곤>은 19세기 말에 쓰여진 명저로, 경제의 진보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이 빈곤한 이유를 분석했다.

그리고 그 빈곤의 이유는 노동생산물을 토지를 소유한 자들이 지대로 탈취해 가기 때문이며, 이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지대를 전액 세금으로 징수(토지가치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의 종합부동산세는 바로 헨리조지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것이다. 게젤의 <자연스러운 경제질서>는 주류경제이론과 마르크스주의, 헨리조지 등의 사상을 모두 비판하면서 나온 경제이론서이다. 우리들은 그 책을 읽고 매료되어 모임 이름도 아예 ‘질비오게젤연구모임’이라고 정했다.


- 게젤의 이론을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한다면

게젤은 경기침체와 실업, 불평등의 원인을 두 가지 특권에서 찾았다. 하나는 토지사유(私有)에 따른 지대(地代)이고, 또 하나는 화폐의 불후성(썩지 않는 성질)에 따른 이자가 그것이다. 이 두 특권이 경제의 원활한 작동에 장애를 일으켜 경기침체나 인플레가 발생하고, 노동의 대가를 중간에서 가로채 간다. 실업이나 빈부격차의 뿌리다. 그래서 두 특권을 제거하기 위해 그는 토지국유화를 통한 자유토지와 썩는 화폐로서의 자유화폐를 제안했다.


첫번째 개혁은 토지의 국유화이다. 토지의 사유는 토지의 자유로운 이용을 막아 경제활동을 왜곡하고, 지대를 받아 불로소득을 얻는 불평등의 원천이다. 그래서 사유토지를 시가대로 매입하되, 그 대가로 이자부국채를 토지소유주에게 지급한다. 해당 토지는 공공입찰방식으로 임대하여 거기서 나오는 임대료로 국채이차를 지급한다. 이렇게 되면 부동산투기도 사라진다. 투기는 썩어가는 건축물이 아니라 더 공급도 안되고 썩지 않는 토지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토지국유화에도 불구하고 발행한 국채의 상환과 이자문제가 남는다.


또 게젤은 이자는 ‘썩지 않는 기존화폐’가 ‘썩는 재화’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본다. 즉 보통의 재화는 썩고, 보관료나 유통비용이 발생하지만 화폐는 썩지 않고 어떤 관리비나 유통비용도 들지 않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댓가로 이자(기초이자라고 한다)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자를 제거하려면 화폐의 불후성을 제거하는 개혁이 필요하며, 그게 바로 자유화폐, 즉 감가화폐이다. 자유화폐를 실시하면 화폐를 보유하는 순간부터 그 가치가 끊임 없이 감소하므로 결국 이자가 사라지고, 돈의 자기증식이나 부채의 누적이 없어진다. 특히 화폐가 유통시장에서 빠져나가 금고에 잠자고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유통화폐의 부족에 따른 공황, 숨어있던 돈의 일시적 분출에 의한 자산가격 폭등이나 투기도 점차 사라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이자율도 “0”이 되고 국채이자도 “0”이 되어 지급할 필요가 없다. 그 이후에는 국유토지 임대료로 토지를 매입한 국채 자체를 갚아 나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 게젤의 이론은 마르크스주의나 공산주의에 가깝지 않은가

게젤의 이론은 잉여가치(이자나 지대의 원천)를 없애자는 점에서 사회주의 사상과 맥을 같이한다. 두 사상 모두 노동자들이 노동의 대가를 충분히 보상받지 못한다는 문제인식에서 출발하는데 다만 접근 방식이 다르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이 잉여가치를 빼앗기기 때문에 생산수단을 사회화해야 한다고 하는 데 비해 게젤은 노동대가가 충분하지 못한 이유를 토지사유와 화폐특권에 따른 지대와 이자를 자본가가 중간에서 불로소득으로 가져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토지의 사적 소유”와 “화폐의 축적기능”이라는 두 가지 특권을 없애면 지대와 이자가 사라져 노동자(기업 노동자만이 아니라 자기노동으로 일하는 사람 모두)들이 노동의 대가를 충분히 누린다는 것이다. 또 화폐가 축장되지 않아 경제가 활성화되고 일자리가 늘어나므로 노동소득이 크게 증대하여 노후소득

까지도 충당할 수 있다고 본다.


또 자유토지는 토지의 국유화라는 점은 같지만 공산주의 체제에서의 국유화는 몰수에 가깝고, 유상으로 접수한다고 해도 제값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게젤의 경우는 시가 보상을 해 주는 방식이어서 토지소유주로서도 손해를 볼 게 없다. 여기서 시가보상이란 갖고 있는 토지를 국유화하면서 임대료와 같은 액수의 채권이자를 주는 것이다. 게젤의 사상은 인간 본성인 이기심과 경쟁을 전제로 한 경제질서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산주의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 우리 경제에 자유화폐 개념을 도입한다면

코로나 사태 이후 정부는 재난지원금이나 지역화폐를 시한부 화폐 형식으로 제공했다. 이 화폐로 저축하거나 투기를 하지말고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구매하라는 점이 자유화폐의 취지와 부합한다. 다만 그동안 지방정부에서 발행한 지역화폐는 근본적 한계가 있었다. 지역화폐에도 시한이 있지만, 이를 받은 상인이 현금으로 환가하는 순간 시한부화폐로서의 효과는 사라지고 기존 화폐로 편입된다. 따라서 지역화폐도 일회성 시한부화폐에서 시한까지 지속사용이 가능한 지역화폐로 개선이 필요하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각종 정부 보조금이나 사회복지 지출 등 무상이전 지원금을 자유화폐 방식으로 지원하는 걸 고민해보아야 한다. 이를 통해 자유화폐의 경제적 효과를 체험하고, 확대여부를 평가해 볼 수 있다.


- 앞으로의 계획은

제일 중요한 건 사람들이 이 책의 내용을 습득하고, 우리 현실에 맞는 정책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주변에 널리 알리고 토론 모임에 참여해 발제하고 한국은행 등 관계기관 전문가와의 토론도 행하면서 실현가능한 방안 찾기에 노력하고 있다. 또한 대선국면에서 후보진영에도 정책 제안을 하고 있다. 이제 원서가 번역출판되었고, 독자들의 호응에 힘입어 이미 재판을 찍었다. 이제 좀더 대중적 확산을 위해 <게젤입문서>를 준비하려고 한다. 또 책의 마지막 장에 소개된 로빈슨 크루소 우화를 이용한 자유화폐 설명을 연극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거나 만화로 만드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