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7호] 가상화폐의 정치경제학 / 이인호(경제 76,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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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호 교수


2008년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는“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라는 논문을 발표하였고, 이 논문은 최근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가상화폐의 탄생을 가져왔다. 이 때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때로 이 논문은 당시의 금융위기를 만들어 낸 금융시장에 대한 강한 불신과 불만을 표출하였고 새로운 금융 체계를 제안하였다.


금융위기를 만들어 낸 기존의 금융시장체계에 대한 대안으로 이 논문은 인터넷 상에 분산된 원장을 이용해 경제적 거래에 필요한 결제를 수행하는 기술을 소개하였다. 이 기술은 우리가 블록체인이라 부르는 방법으로 이후 가상화폐뿐 아니라 다양한 경우에 필요한 정보를 인증하는 방법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 기술이 매우 유망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논문이 각광을 받게 된 것은 다른 이유이다. 그 논문에서도 지적하였듯이 각 나라의 통화당국은 통화를 발행하여 막대한 이윤을 남기고 있다. 세뇨리지(seigniorage)라고 불리는 이 이윤은 화폐를 발행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과 발행된 화폐가 가지는 가치의 차이를 말한다. 예를들어 5만원권과 1만원권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미미하지만 막상 발행된 화폐는 5만원 혹은 1만원의 가치를 가지고 통용된다. 따라서 통화를 발행하는 통화당국은 엄청난 이윤을 남기는 셈이다.


사토시의 논문 이후 실제 발행된 비트코인을 비롯한 여러 가지 가상화폐들이 국가가 발행하는 법정화폐와 같이 통용이 된다면 그 발행자는 막대한 세뇨리지를 국가 대신 얻는 결과가 생겨난다. 막대한 가상화폐 발행으로부터의 이윤과 그 가상화폐의 가치가 올라가면 얻게 되는 거래 차액을 노리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가상화폐 시장을 갑자기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만들었고, 주요국의 통화당국들이 대응책 마련에 허둥대는 결과를 가져왔다.


블록체인 기술의 유용함은 별개로 국가의 통화당국이 가지고 있는 화폐발행으로부터 생기는 이윤을 얻을 권리를 개인들도 가질 때 생기는 문제를 생각해 보자. 돈은 인간의 경제활동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수단이다. 돈이 없다면 물물교환을 해야 하고 거래 당사자들이 공급하는 재화와 수요하는 재화가 정확히 대응해야 한다. 이러한 이중 우연의 일치는 대부분의 일상적 거래에서 충족이 되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화폐는 거래의 매개 수단으로 작동하는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요건은 시장참여자들의 신뢰이다.


통화당국이 발행하는 통화들은 국가의 보증에 기초한 신뢰가 존재한다. 요즈음 새로이 만들어져 나오는 가상화폐는 그 발행자들이 신뢰를 제공할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다. 발행자는 시장 참여자들이 자신의 가상화폐를 믿어 준다면 막대한 이윤을 얻을 수 있고 그들은 자신이 발행하는 가상화폐가 믿을 만하다고 주장할 온갖 이유가 있지만 그를 믿고 안 믿고는 다른 문제이다.


가상화폐의 경우 화폐 발행으로부터 생기는 세뇨리지를 임의의 개인들이 가져도되는가도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다. 만일 아무나 통화를 발행하여 이윤을 만들어 낼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온갖 가상화폐가 돌아다니고 어느 것을 믿어야 할지 몰라 커다란 혼돈이 생겨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혼돈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만들어 냈던 기성금융시장이 가진 문제보다 더 심각한 종류라고 여겨진다.


■ 이인호 교수

미국 예일대에서 회계학 석사, UCLA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영국사우스햄튼대 교수로 있다가 2001년 모교 경제학부 교수로 부임했다. 모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경제학회지 편집위원, 공정거래위원회 자문위원, 한국금융학회 간사, 예금보험위원회 위원, 금융발전심의위원회 위원장, 서울저널오브이코노미 편집자 등으로 활동했으며, 2020년 2월부터 2년간 한국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한국경제학회 청람상, 다산경제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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