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상 논단 / 시론

[제187호] 공산주의의 실체, 한∙중∙일의 공산당 (하) / 안태호(경제 5회, 본회 명예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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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호 (경제 5회)


(4월 1일자 본보에 이어서)

3. 중국의 공산당

중국의 공산당은 지난 해로 창립 100주년이 되었다. 1921년 천두슈(陳獨秀)와 리다자오(李大釗)를 중심으로 마오쩌둥(毛澤東) 외 13명과 당원 30명에 의해 발족되었다. 1924년에는 쑨원(孫文)이 주도하는 중국국민당과 합작(국공합작)했다가 국민당의 통치권을 이어받은 장제스(蔣介石)가 강력한 반공정책을 시행하자 1927년 합작이 끝났다. 그 후 중국공산당은 마오쩌둥이 주도했는데 이 때 일본이 중국을 침략해 들어오자 1937년 다시 국민당과 합작했다.(제2차 국공합작)


그러나 1945년 일본이 패망한 후 공산당과 국민당 간에 내전(內)이 발생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공산당은 1949년 10월에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했고,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는 타이완(臺灣)으로 패주했다. 그 후 오늘날까지 중국대륙은 공산당 정권이 통치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현재 중국 내에서 사실상 유일한 집권정당이다. 정확히 말하면 공산당 외에 몇 개의 정당이 있기는 하나 유명무실하다. 중국공산당에서는 '전국인민대표대회'(全會)라는 전당대회가 5년마다 열리고 있다. 이 대회에 공산당 주요 인물들이 대거 참석하며, 여기서 결정된 사항이 다음 회의 때까지의 중국 정책방향을 결정한다. 현재 당원 수는 9,500만명으로 세계 최대의 정당이기도 하다. 중국공산당의 실태를 보면 다음과 같다. 


즉 첫째, 당이 국가를 지배하고 국가가 사회를 지배하는 국가지배의 최고 권력조직이다. 둘째, 모든 재판의 판결은 당의 지도하에 이루어지고 삼권분립이 되어 있지 않은, 법치(法治)라기보다 인치(人治)에 가까운 정치형태다. 셋째, 전국인민대회에 참석하는 대표는 모두 공산당이 선임한 사람들이며, 넷째, 조직은 단위로 표시되어 어떠한 조직이든 공산당의 지부가 있기 마련이다. 다섯째, 공무원은 모두 공산당 당원이어야 하고 취업에도 당원이 우선적으로 채용되며, 당원에게는 의료 및 복지 등이 보장되고 있다. 


인민해방군은 당의 군대로서 “정권은 총구에서 발생한다”하여 정권기반은 바로 군대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지도자의 최대 과제는 군대의 장악에 있게 된다. 일반 시민은 철저한 개인정보관리시스템에 의해 공안 경찰의 감시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공산독재의 특징은 첫째, 신속한 의사결정, 둘째, 국내 여론의 통일화, 셋째, 인구∙경제∙군사면에서 수적(數的) 이익을 추구한다는 데 있다. 이런 점에서 옥스퍼드대 쉬타인 링엔 명예교수는‘21세기 중국의 정치는 완벽한 독재’(perfect dictatorship)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식 공산주의는 세계민주주의 사회를 잠식할 위험성이 크다. 최근 미∙중 간의 갈등도 이러한 우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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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일본의 공산당

일본공산당의 시초는 소련 공산당 코민테른(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산하의 일본지부였다. 당시 일본 공산주의자들은 소련을 ‘노동자의 조국’이라고 하여 크게관심을 가졌지만, 실제로는 스탈린 독재의 암흑의 사회였음을 알지 못했다. 일본 공산당은 1922년 사카이 도시히코(堺利彦) 위원장과 도쿠다 규이치(德田球一) 집행위원장을 비롯한 100여명의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결성되었다. 이들은 코민테른의 지도 아래 정치활동을 시작했으나, 합법적으로 인정 받지 못하고 있다가 1945년 일본이 패망한 후 합법 정당이 되었다. 그 후 실시된 총선에서 몇개의 의석을 차지했으나, 1991년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면서 당의 위세는 매우 위축되었다. 그러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는 신규 당원이 늘어나고, 각종 지방선거와 비례대표 선거에서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경기 악화로 실직자가 늘어나면서 자민당이나 민주당 등 기존의 주요 정당에 대한 반감으로 공산당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오랫 동안 천황제 폐지, 자위대해산, 자본주의 폐지 등을 주장하여 일본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가치관을 단절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지난 2004년 공산당 강령을 개정하여 천왕제와 자위대를 인정하고, 당이 목표로 하던 ‘민주주의 혁명’을‘자본주의 틀 안에서의 민주적 개혁’으로 바꾸는 등 유화노선으로 전환했다.


이상과 같이 일본 공산당은 그동안 많은 파란곡절을 겪었지만 2017년 현재 30만명의 당원, 기관지 아카하타(赤旗)의 113만명의 구독자, 2만여개의 지부(2018)를 갖게 되었고, 국회의원 12명의 의석수도 갖고 있다. 따라서 공산당을 모르고서는 일본 정치를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공산당이 크게 부상되고 있다. 창립 일세기를 맞는 일본공산당이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는 것은 첫째 기관지 아카하타 구독자의 증가와, 둘째 공산당 당원들의 꾸준한 노력의 성과로 보인다. 특히 자민당이 ‘권력분산형’인데 반해 공산당은 ‘권력집중형’으로서 당의 조직과 의사결정은 모두 당의 엄격한 규제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 공산당의 변천을 요약하면 ① 전쟁시기의 비합법적인 공산당에서, ② 미군 점령하에서는 평화혁명 공산당으로, ③ 한국전 당시는 폭력혁명의 공산당으로, 그리고 현재는 ④ 상대방의 방식에 따른 대응전략의 공산당으로 유동적인 변천을 해 왔다. 특히 중국 공산당과는 지난 32년간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해 오다가 1966년 이후부터는 관계가 단절되었다. 그 원인은 첫째, 모택동에 의한 혁명운동이 폭력화하고, 둘째, 인민전쟁의 만능을 강요하였으며, 셋째, 모택동을 신격화하고 모택동 사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라는데 있었다. 결론적으로 공산주의는 독재를 기본으로 하는 바, 독재는 자유의 적이며 또한 인간 생존의 악()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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