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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1호] 대일 무역의존도 낮추기, 이대로 갈 것인가 / 이학노(경제 78학번, 동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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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산업 지원정책 2년 만에 반도체,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종의 국산화와 수입국가 다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일본은 2019년 우리 법원의 강제징용피해자 배상 판결에 반발하여 전략물자 수출통제의 프레임으로 우리나라에 대해 핵심 3종 소재의 수출규제를 시작하였다. 우리가 추진한 대일 소부장 대책과 그 결과를 평가하기는 시기상조이고 좀더 디테일한 정보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무역구조 분석과 역사적 사례를 통해서 그 흐름은 짚어 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5,100억 달러를 세계에 수출하고 480억 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였다. 우리나라의 무역구조를 크게 본다면 일본과 독일에서 소재를, 중동에서 에너지를 수입한 후 국내에서 제조한 부품과 중간재를 중국과 베트남 등에, 완제품은 미국과 유럽 등에 수출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많은 적자를 보는 나라들은 어디일까. 가장 많은 곳이 바로 일본(200억 달러 적자)이고 그 다음은 에너지를 수입하는 사우디등 중동, 자원을 수입하는 호주, 소재와 기계를 수입하는 독일 등으로, 이들 나라로부터의 무역수지 적자는 780억 달러에 이른다. 반면 흑자국은 중국(홍콩 포함 530억 달러), 베트남(280억 달러), 미국(166억 달러) 등이다.


우리나라는 일본으로부터 단 한 해도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적자를 보는 이유는 바로 일본이 소재 및 기계류가 강하기 때문이다. 세계 소재 및 기계류 강국은 일본·독일·미국인데, 우리나라는 특히 일본에 대한 의존이 높다. 우리나라의 대일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2000년대 들어 매년 200억 달러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1986년의 대일 무역역조개선 5개 년 계획을 시작으로 대일 무역수지 적자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대표적인 정책인 수입선 다변화제도는 5년 앞선 1981년부터 시행되었다. 수입선 다변화제도. 일본식 작명의 이 제도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주로 일본 전자제품들의 수입을 제한하는 정책이었다. 소니TV와 캠코더, 코끼리 밥통, 워크맨 등은 나이 지긋하신 분들은“아, 그런게 있었지”하고 향수를 느낄 품목들이다. 일본 전자제품 시장인 도쿄의 아키하바라는 1980년대에는 일본에 가는 사람이면 한번쯤은 호기심에서라도 둘러보거나, 일본 제품을 분해·조립해서 배우는 소위 리엔지니어링 학습 목적으로 우리 엔지니어들이 상주하다시피 하던 곳이었다. 일본에서 캠코더를 여행 휴대품으로 들여오기도 하였고, 남해안 무인도 어디쯤에서 밀수 거래하다 적발되는 사례들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대일 무역수지 적자 개선 정책과 수입선 다변화 정책에 대해서는 찬반 양론이 맞섰다. 정책에 찬성하는 측은 우리가 열심히 수출해 봐야 결국 핵심을 쥐고 있는 일본만 배불리는 것이고 우리의 부가가치는 크지 않기 때문에 국산화를 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반대하는 측은 소위 비교우위(Comparative advantage)에 따라 우리는 우리가 잘하는 것을 해서 성장하는 것이 현명하지 굳이 큰 비용만 들고 잘 안될 대일 무역역조 개선을 추진할 경우 경제적 실익이 없다는 것이었다. 세계 축구의 1인자인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는 왼발이 주무기인데 굳이 오른발까지 잘 쓰려하다가는 오히려 왼발의 경쟁력마저 떨어진다는 논리와 유사하였다.


이 대일 무역역조 개선은 정부의 의욕과 달리 국산자본재산업 육성에서 나타난 일부 성과를 제외하고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국내 산업계의 이익 옹호와 경쟁제한, 수입선 다변화제도 운영상의 투명성 결여 등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대외적으로는 1986년 3저 호기에 따른 한국의 무역수지 흑자 전환과 맞물려 우리나라의 국제무역 위상이 1990년에 무역수지 방어가 허용되던 GATT 제18조 국가에서 무역자유화를 해야 하는 제11조 국가로 전환됨에 따라 수입선 다변화제도를 폐지해야 했고, 그러한 과정에서 대일 무역역조 개선은 국민들의 관심에서 점차 멀어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대일 무역수지 적자를 어떻게 평가하면 좋을까. 우리나라 수출은 2001년 1700억 달러에서 2020년 5100억 달러가 되어 매년 6%씩 성장하는 가운데 2000년대에는 매년 100억 달러 수준, 2010년대에는 매년 400억 달러 규모의 무역흑자를 기록하였다. 이 기간 동안에 대일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일정 밴드를 벗어나지 않았다. 이제 도쿄 아키하바라 시장을 가봐도 별로 살 것이 없을 정도로 좋은 국산 제품이 많이 생산되고 있고 우리나라의 기술수준도 향상되었다. 국제경제학은 애덤 스미스, 리카도, 헤크셰르·올린 유(괮)의 정태적 비교우위 이론에 오랫동안 머물렀으나, 개도국이 선진국을 따라잡는 무역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동태적 비교우위, 제품차별화 이론, 전략적 산업론 등을 추가해 왔다. 일본에 대한 한국의 비교우위 구조가 동태적으로 바뀌어 무역규모 증가에도 불구하고 대일 무역적자는 일정 수준을 넘지 않고 있다.


일본이 수출규제로 우리를 압박하지 않았다면 3종 핵심소재에 대한 대책은 굳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은 정치적 문제에 대해서 경제적인 대응방법을 선택하였고, 우리나라는 플랜 A, 즉 정치외교적 대응이 아닌 플랜 B, 경제적 대응을 선택하였다. 이에 대해서 과거 대일무역역조 개선 대책이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처럼 이번에도 잘 안 되는 것은 아닐까, 일본과 같이 우리도 혹시 정치적인 동기를 가지고 추진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비판과 우려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1980년대 무역수지 개선 대책처럼 대대적인 대일 역조 개선대책은 성과도 거두기 어렵고 이득보다 손실이 더 클 수 있다. 한·일 간 경제관계는 서로에 대한 공격과 방어로 비용을 지출하기보다는 무역증대를 통해서 상호 윈-윈할 수 있다. 따라서 한·일 간 전면적인 소재전쟁으로 확산시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핵심기술과 부품에 대한 대외 의존을 줄이고 공급망의 자체 완결구조를 갖기 위해서 세계 주요국들이 각축을 벌이는 상황에서 이번 핵심 3종 관련 소식은 우리의 소부장 기술 정책의 시금석으로 긍정평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학노 교수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무역정책과장, 석유산업팀장(부이사관)을 역임하고 2007년 9월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한국통상정보학회 회장,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위원장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무역금융보험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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