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7호] 쌍육회 봄소풍, 영남대로 옛길을 걷다 / 윤제철(경영 66, 윤회계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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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철(경영 66)


문경새재 봉생정∙고모산성∙토끼비리와 김룡사∙대승사 답사 


우리 쌍육회에서는 지난 5월 31일 문경 새재로 봄소풍을 다녀왔다. 쌍육회는 서울상대 66학번(24회) 동기회로 학번에 6자가 두 번 들어갔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우리가 야외 나들이를 한 건 2019년 9월 원주 뮤지엄산에 다녀온 후 거의 3년만이다. 우리가 나들이 할 때에는 꼭 부부동반을 하는데 이번에 남녀 50여명이 참가했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 동문 한 사람과 부인 한 사람이 멋진 시를 남겼기에 오른쪽에 싣는다.


문경 새재는 옛날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넘던 고개라고 한다. 오늘날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대부분 그 고갯길을 따라 제1관문, 제2관문, 제3관문을 통과해 보고, 입구에 드라마 촬영을 위해 만든 오픈 세트장을 구경하고 돌아간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번 여행에서 전혀 다른 구경을 했다. 영남대로(嶺南大路) 옛길에서 봉생정, 고모산성, 토끼비리와 산사(山寺)를 찾아 다니며 그 역사와 유래를 들을 수 있었다.


우선 영남대로 이야기이다.

과거 우리나라에는 서울을 중심으로 9개 간선도로가 있었고, 각 간선도로에 지선도로가 있어 전국 각지를 연결했다고 한다. 간선도로로는 영남대로(한양-동래∙통영)ㆍ의주대로(한양-의주)ㆍ경흥대로(한양-함경북도 경흥)ㆍ관동대로(한양-울진), 등이 있었고, 영남대로에는 좌로(左路), 우로(右路), 중로(中路)가 있었다고 한다. 그 간선도로의 하나인 영남대로 중로는 한양에서 용인-충주-문경새재를 거쳐 대구-동래에 이르는 길이고, 거리는 약 380㎞라 한다. 간선도로 중 길이 가장 넓고, 통행량도 많았다는 길이다. 우리는 이번 여행에서 영남대로 중로가 거쳐가는 문경새재 주변의 옛길을 걸을 수 있었다.


그 옛길에서 첫번째로 찾아간 곳이 봉생정(鳳苼亭)이다. 봉생의 봉(鳳)은 봉황, 생(苼)은 관악기의 일종인 생황(苼簧)을 뜻하여 신선이 피리를 불만큼 고귀한 정자라는 뜻이라 한다. 이 정자는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유성룡이 지어서 고향인 안동 하회마을과 한양을 오갈 때 경치를 즐기며 쉬어 가던 곳이라고 한다. 정자(亭子)라면 대개 팔각정이나 육각정처럼 지붕과 기둥과 마루만 있는 정자를 연상하지만 이 정자는 넓이도 넓고, 자그마한 방이 2개나 들여져 있다. 말하자면 일반 가옥과 정자가 혼합된 특이한 형태인데, 이런 형태의 정자는 우리나라에 흔치 않고 그저 몇 군데 더 있다고 한다. 정자에서 내려다보면 조령천과 영강이 만나서 돌아나가고, 강 옆에는 층암절벽에 노송이 우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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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만에 만난 우리들은 거기서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 목적지인 고모산성(姑母山城)으로 향했다. 고모산성 가는 길에 돌고개 마을(石)이 있어 거기서 잠시 쉬었다. 돌고개 마을에는 돌무더기가 몇 개 있고, 그 옆에 성황당이 있다. 돌무더기는 무언가 소원을 비는 사람들이 이 고개를 넘으면서 돌을 하나씩 둘씩 얹어 놓아 쌓인 것인데 마을과 마을의 경계표시이기도 하고, 적이 침범해 들어올 때 무기가 되기도 했단다. 또 이곳에서는 옛날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는 선비들이나 한양에서 영남지방으로 내려가는 관리들이 하룻밤 쉬어갔기 때문에 이곳에 주막거리가 있었다고 한다. 이 주막거리에서 묵고 있노라면 갖가지 기쁜(慶) 소식을 듣게(聞) 되기 때문에 이 곳을 문경(聞慶)이라고 한단다. 


돌고개 마을에는 옛날 주막거리가 일부 복원되어 있다. 이 곳 성황당은 주막거리에서 사랑을 약속했던 선비가 돌아오지 않아 목을 맨 처녀들의 원혼을 달래주기 위해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돌고개 마을에서 조금 지나 고모산성에 올랐다. 고모산성은 2세기경 신라가 북쪽으로부터의 침입을 막기 위해 처음 쌓았는데 그 후 후삼국시대를 거쳐 대한제국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 고쳐 쌓았다고 한다. 그런데 삼국시대에 쌓은 성은 성벽 위가 그냥 밋밋하지만 임진왜란을 치르고 나서 개축할 때에는 성벽 위에 여장(女성가퀴), 즉 총을 쏠 수 있는 구멍을 설치했는데 그 두가지 형태의 성벽을 한 곳에서 볼 수 있었다.


고모산성 정상에 올라가니 진남교반(鎭南橋畔)의 아름다운 경치가 내려다 보였다. 진남교반은 고모산성 아래 영강(江)에 놓인 진남교 일대라는 뜻. 경북8경 중에 제1경이라고 한다. 강변에 반달처럼 생겨난 모래밭과 노송이 우거진 숲이 절경을 이루었다. 고모산성에서 돌고개 마을로 이어지는 산 경사면에 ‘토끼비리’가 있다. ‘비리’는‘벼랑’의 문경 사투리. 토끼가 지나다니는 벼랑길이라는 뜻이다. 고려태조 왕건이 삼국통일을 위해 후백제를 공격할 때 고모산성에 이르러 길이 끊어졌는데 이 때 토끼 한 마리가 벼랑을 따라 달아나더라는 것이다. 왕건은 그 벼랑길을 깎아 잔도(棧道)를 만들고 그 길로 군사들을 이동시켰다고 한다. 우리는 데크길을 따라 토끼비리 현장을 답사했다. 천 수백년 동안 사람들이 지나다녀 반들반들해져 있었고, 그래서 옛 선인들의 발자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절 구경을 했다.

먼저 김룡사(金龍寺)와 화장암(華藏庵)을 둘러보고 다음에는 대승사에 들렸다. 대승사는 신라중기인 587년에 창건되었는데 어느 날 사면에 불상이 새겨진 큰 바위(사불바위)가 산 위에 내려앉자 당시 왕이 소문을 듣고 찾아와 예불을 하고 절을 짓게 하였다고 한다. 이 절도 김룡사처럼 규모가 크다. 특이한 것은 본채에 들어 가기 전에 솟을 대문을 한 사랑채 같은 큼직한 건물이 있는데 백련당이라 하여 이곳에서 템플 스테이를 한다고 한다. 대웅전에 들어가 부처님께 절을 하고 천천히 살펴 보니 부처님 뒤 벽면에 금빛 조각상이 있다. 다른 절에는 부처님 뒤에 대개 탱화(幀畵, 걸어놓는 그림)가 걸려있으나, 이 법당에는 조각상이 있는 것이다. 탱화에는 대개 부처님과 보살, 그리고 부처님 제자들이 그려져 있는데, 이 법당 조각상은 “목각아미타여래 설법상”이라하여 아미타부처님이 제자들에게 설법하는 모습을 나무에 새기고 그 위에 도금을 한 것이다. 국보 제321호라고 한다. 이런 목각탱은 우리나라에 몇 점 안 된다고 한다.


대웅전 오른쪽에 대승선원이 있다. 이 선원(禪院)은 옛부터 원효대사, 의상대사, 무학대사 같은 고승들이 머물렀고, 근래에는 성철스님, 청담스님, 서암스님, 자운 스님, 고암스님 같은 분들이 수행정진 했다고 한다. 또 특이한 것은 대웅전 앞 마당 좌우 양쪽에 노주석(露柱石)이 있는 것이다. 노주석은 석등과 같은 것이지만 그저 4각형 석주 위에 4각형 반석을 올려 놓았을 뿐, 불을 켜 넣는 공간, 즉 화사(火舍)가 없는 점이 다르다. 이 같은 노주석도 우리나라에 몇 기(基) 되지 않는다고 한다. 오늘 우리는 짧은 시간에 우리나라에서도 희귀한 문화재를 여러 곳 둘러본 것이다.


원래 일정에는 대승사의 암자인 윤필암에도 들릴 예정이었으나 시간이 늦어져서 바로 서울로 올라왔다. 이번 여행을 치밀하게 준비하고, 기념품과 아침 김밥과 간식을 정성껏 준비해준 동기회장 신병호 부부에게 감사 드린다. 이번 여행 일정을 알차게 설계하고, 가는 곳마다 역사와 문화의 향기가 가득찬 해설을 해 주신 무심재 투어 이형권 대표님께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또 우리 쌍육회 발전에 써 달라며 큰 금액을 희사해 준, 그래서 이번에 개인부담없이 고품격 여행을 하게 해준 영원무역 성기학 회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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