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0호] 서울상대인 스토리 / 박재완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경제 73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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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에 선거공약 재정소요 검증팀 만들어” 


지난 3월 본회 빛내자상을 수상한 박재완 동문은 성균관대 행정학과 명예교수이자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으로 있다. 아울러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며, 본회에서 부회장도 맡고 있다. 지금 그러하듯이 그 동안 그가 걸어온 길 또한 그 폭이 매우 넓다.

1979년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공직을 시작한 후 국가안전보장회의, 감사원, 재정경제원, 청와대 대통령실에서 행정사무관과 서기관으로 근무했다. 감사원 재직기간 중 미국에 유학하여 하버드대에서 정책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고, 1996년부터는 성균관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2004년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제17대(2004-08년) 국회의원이 되었으며,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고용노동부장관,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내다가 다시 성균관대학교로 돌아와 국정관리대학원 원장을 역임했다. 동 대학 행정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2014년 2월에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에 취임했고, 2016년 3월에는 삼성전자 사외이사에, 지난 2020년 2월에는 동사 이사회 의장에 각각 선임되었다. 본보에서는 지난 4월 20일 박 이사장과 대담을 나누었다.


먼저 빛내자상 수상을 축하 드립니다. 현재 이사장으로 계신 한반도선진화재단의 설립목적은 무엇이며, 어떤 사업을 하고 계시는지요.

한반도선진화재단은 공동체자유주의를 기치로 한반도의 통일과 선진화를 위한 정책 대안을 연구/전파하고 있습니다. 중도보수 성향의 정책 싱크탱크로서 나라의 중장기 전략과제에 중점을 두고, 정치권이 외면하는 근원적인 구조개혁 처방을 환기해 왔습니다. 21개 정책연구회와 2개 연구포럼을 운영하고, 매주 목요일 세미나를 개최하며, 연구성과는 이슈브리프와 책자로 발간합니다. 


재단 설립자인 고 박세일 교수(김영삼정부에서 사회복지수석을 하셨지요)와 친분이 있으셨다고 들었습니다만

네, 박세일 교수님은 저의 멘토이십니다. 박 교수님께서 청와대 수석으로 계실때 제가 재정경제원에서 파견 나가 보좌관으로 보필했습니다. 2004년에는 박교수님 권유로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비례대표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또, 2008년 청와대에 있을 때에는 박교수님께서 만드신 청와대 불자회(佛子會, 불교신자들의 모임) 회장을 맡았고, 공직에서 물러난 2014년에는 박 교수님이 창립하신 한선재단 이사장까지 이어받았습니다.


경제학부 출신으로 미국에서 정책학을 전공하신 배경은 어떠하신가요

공무원 신분이라 정책의 형성/분석/집행에 관한 지식의 갈증이 컸습니다. 정책학은 실천/응용학문이어서 여러 학문의 협업이 긴요한데, 특히 경제학이 그 중추에 있기에 저로선 자연스러운 선택이었고, 공부에 큰 어려움도 없었습니다. 


1996년 공직을 떠나 성균관대학교 교수가 되셨습니다. 다른 분들은 교수로 계시다가 공직으로 진출하십니다만 당시 특별한 계획이 있으셨는지요?

자녀 교육 등으로 한창 생활비가 많이 들 시기라 공무원으로서는 가계를 꾸려나가기가 벅찼습니다. 또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학문에 대한 애정과 자신감도 생겨 학계로 옮기면 나라에 기여할 기회가 더 많고 보람도 더 크게 느낄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유학자이셨던 백부님 영향도 있었습니다.


2004년에는 의회로 진출하셨습니다. 한나라당과 특별한 연고가 있으셨는지요.

한나라당이 탄핵 역풍에 휘말려 지리멸렬하자 박세일 교수님께서 17대 총선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으셨습니다. 나라가 너무 한쪽으로 쏠리고 정부의 대북정책기조가 위태롭다는 걱정 때문이었죠. 그때 저를 포함해 학계 몇 사람을 비례대표로 천거하셨습니다. 당신의 경험에 비추어 단기필마로는 일하기가 어려우니 함께 들어가 한나라당을 바로잡자는 취지라서 받아들였습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일하셨습니다. 당시 광우병 촛불시위로 어려운 정국을 처리하셨는데 특별한 소회가 있으신지요?

새 정부 출범 후 주요직 인사를 비롯해 채 기반도 정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광범위한 저항에 맞닥뜨려 당혹스러웠습니다. 정책의 내용은 옳았지만, 대선 압승때문에 자신감이 넘쳐 여론 수렴과 국민 공감대를 얻는 과정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죠. 오만하고 강퍅한 정치보다 겸손하고 부드러운 정치의 힘을 절감했습니다.


이후 국정기획수석으로 계시면서 여러 정책을 주도하셨습니다. 특히 4대강 사업은“한국판 뉴딜정책”이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와 관련한 특별한 소회가 있으신지요.

‘4대 강 살리기’는 홍수와 가뭄에 대비한 치수, 수질과 생태환경 개선, 수변 공간의 레저활동, 물길을 활용한 물류와 관광 등을 겨냥한 다목적사업입니다. 우린 물이 부족하고 기후와 지형 특성상 홍수에 취약하죠. 인구밀도가 높아 수질도 나쁩니다. 처음엔 욕을 먹더라도 4대강 살리기는 꼭 했어야 하는 사업이라 보람과 긍지를 느낍니다. 앞으로 지류와 지천까지 반드시 정비해야 합니다.


2010년 고용노동부장관으로 계실 때‘2020 국가고용전략’을 수립, 시행하셨습니다. 그 주요내용과 성과는 어떠했는지요. 

실업률을 낮추는 데에 중점을 두던 기조를 고용률을 높이는 쪽으로 전환했습니다. 전일제 정규직만 고집하지 않고 자녀를 돌보아야 하는 부모나 노인 등이 원하는 다양한 시간제 근로를 확대하려고 했죠. 고용의 유연성을 늘려야 OECD에 서 두 번 째로 긴 근로시간도 줄여나갈 수 있습니다. 그 덕분인지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로존 재정위기 와중에도 성장률에 비해 일자리는 나름 선방했습니다.


오늘날의 고용 및 노동정책과 비교하면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전일제 정규직만 좋은 일자리로 보는 고정관념을 바꿔야 합니다. 고용이 유연하지 않으면, 일감이 늘어도 기업은 사람을 뽑지 않고 기존 인력만으로 잔업 등을 통해 버티는 불합리한 관행이 고착됩니다. 유럽 등에선 번듯한 시간제 일자리도 많습니다.


2011년 기획재정부 장관에 취임하신 후 경제정책의 중점은 무엇이었나요.

유로존 재정위기가 터진 때라 외환 방어막을 쌓는 등 외환위기가 닥치지 않도록 힘을 기울였죠. 또 정치권의 선심공약을 막는 일도 긴요했습니다. 그 결과 각국의 국가신용등급이 줄줄이 강등되던 추세에도 우리 등급은 역대 최고로 올랐습니다. 고유가 때문에 치솟는 생활물가와 전월세가를 안정시키느라 고생했고,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을 한국에 유치하느라 전방위 외교를 펼치기도 했죠.


2012년 총선을 앞두고“뚝심 장관”으로 통하셨다는데 어떤 일이 있었나요?

그런 말을 듣기가 부끄럽습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20년 만에 같은 해 치르게 되면서 공짜니 반값이니 하는 무분별한 복지 확대 요구가 쏟아졌습니다. 그래서 기획재정부 내에 정당 공약의 재정소요를 검증하는 TF를 만들었습니다. 공약의 옳고 그름은 몰라도 돈이 얼마나 드는지는 알려야겠다고 판단했죠. 그 일로 중앙선관위에서 경고를 받기도 했습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재정지출을 방만하게 늘리는 공약에 대해선 제가 일관되게 반대했기에 그런 얘기가 나온 것 같습니다.


오늘날의 재정,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정부가 만기친람(萬機親覽, 모든 일을 친히 보살핌)형으로 모든 분야의 모든 사안에 개입하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건 과욕입니다. 자칫‘보모(保姆)국가’가 되면, 민간의 자율과 책임이 희석되어 활력이 낮아지고 하향 평준화로 치달을 위험이 큽니다.


삼성전자 창사 이래 처음으로 외부인사인 사외이사로서 이사회 의장을 맡으셨습니다. 이사회의 독립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우리 기업들의 지배구조는 세계표준에 가깝게 꾸준히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사회의 독립성과 투명성도 몰라보게 개선되었습니다. 특히 삼성전자는 외부의 준법감시위원회까지 가동되고 있어서, 여느 글로벌기업보다 더 엄격한 통제를 받고 있는 셈입니다.


그 동안 확고한 소신을 갖고 다양한 활동을 해 오셨는데 건강관리는 어떻데 하고 계시는지요?

아침에 30분 가량 스트레칭을 하고, 많이 걷습니다. 되도록이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적어도 하루 1만 5천보는 걷습니다. 집에서 TV를 볼 때도 거실을 빙빙 돌면서 걷습니다. 이런 일이 건강에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네 바쁘신 중에도 대담에 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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