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6호] 서울상대인 스토리 / 박진회 전 한국씨티은행장(무역 76학번) 인터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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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인상은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며 속도조절 해야”

 

코로나 팬데믹은 우리 일상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대면활동보다 비대면, 온라인 활동이 많아지고,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는 금융부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2016년 인터넷 전문 은행이 제도화 되자 이에 자극을 받은 국내은행들은 업무의 디지털화를 핵심 경영과제로 삼았으나 본격적인 디지털 전환은 코로나19가 확산된 2020년 이후에 이루어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은행 업무의 디지털화를 선구적으로 추진한 은행장이 있다. 한국씨티은행의 박진회 전행장이다. 201410월 행장 취임 이후 디지털 뱅킹에 주력하여 소비자금융 관련 인원과 점포수를 줄이고, 대신 자산관리부문을 강화하는 전략으로 은행의 수익성 개선에 큰 공적을 남겼다.

 

박 전행장은 무역학과 졸업 후 한국개발연구원(KDI)에 근무하다가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영학 석사, 영국 런던대에서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에 미국 씨티은행 서울지점에 입행하여 자금담당 본부장을 지냈고, 2001년에는 국내은행인 한미은행으로 자리를 옮겨 재무담당 부행장을 역임했다. 20044월 한미은행이 씨티은행 서울지점에 합병되어 한국씨티은행이 되자 동 합병은행의 수석부행장이 되었고, 201410월 행장이 되었다. 2020년 퇴임 후에는 최근까지 인터넷 전문은행인 토스뱅크의 사외이사로 활동했다.

 

최근 박진회 전 씨티은행장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외국 유학을 마치고 미국계 씨티은행에 취업하셨습니다. 그 동기는?

박사과정 진학도 생각했습니다만 금융산업에 관심도 있었고, 결혼 후 가족부양의 부담도 있어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씨티은행은 80년대 초부터 해외 MBA나 대학원 출신을 간부 후보 인력으로 뽑아 양성하고 이를 통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경영하였습니다. 제가 씨티은행에서 그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외환파생상품을 경험한 것이 나중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씨티은행 서울지점에 계시던 1997-98년 한국은 심한 외환위기를 겪었고, 이 때 국내 다수 은행들이 통폐합되었습니다. 그 때 느끼신 점은?

과거 조선이 망하고 일본에 넘겨졌을 때 우리 조상들도 이렇게 무력감을 느꼈는지 모르지만, 1984년 금융권에 발을 들여 놓은 후, 나름 외환시장 분야에 전문지식이 있다고 자처하고 다니다가 부끄러울 정도로 자긍심이 무너졌습니다.다만 씨티은행 본사와 지역본부에서는 이미 한국의 재벌기업들과 중대형 기업들이 과다한 부채에 의존해 경영을 하는데 대해 조심하는 분위기로 바뀌었고, 이들 기업에 대출해주는 한국 금융기관들의 단기자금 위주의 조달 방법을 매우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보철강 부도, 정치권 개입에 따른 기아지동차 부도유예협약, 태국의 국가부도사태 등 국내외 금융환경 변화를 예의주시하면서 외환시장의 급격한 움직임이 초래할 금융위기에 대비했습니다. 그리고 막상 사태가 터진 후에는 오히려 상당히 큰 규모의 수익을 연속으로 낼 수 있었습니다.

 

2004년에는 한국씨티은행의 수석부행장이 되셨습니다. 그 경위는?

한미은행 경영진의 일원으로 합류한 후 3년여 만에 대주주인 사모펀드가 회사를 매각하게 되었고, 씨티그룹의 한국시장 확장 정책으로 하필이면 예전에 근무하던 씨티은행이 한미은행을 최종 인수하게 되었습니다. 보통 이럴 경우, 피인수 회사의 경영진은 떠나고 새로운 경영진이 부임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인데, 씨티은행 본사에서는 그 동안 한미은행을 이끌어 온 하영구 회장의 경영능력을 높게 평가하여 계속 신임하였고, 저도 양 조직에서 모두 근무해 본 경력을 인정 받아임원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2008년에 리먼브러더스 사태 등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습니다. 이 때 한국씨티은행은 어떠했는지요?

한국씨티은행은 씨티은행 서울지점으로 개점한 1967년 이후 기업금융에만 전념했으나, 2004년 한미은행 인수 후에는 소비자금융으로도 영업을 확대하여 아시아 역내에서 위치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이후 씨티은행 본사가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게 되고, 그래서 신용등급이 자회사인 한국씨티은행보다 강등되는 바람에 새로운 투자에 제약을 받는 기간이 상당히 지속되었습니다. 그래서 국내 대형금융기관처럼 공격적인 영업과 외형확장정책을 쓰지 않고, 선택과 집중을 하는 전략으로 바꾸었습니다. 즉 잘 할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에 집중 투자함으로써 해당 부문에서는 점유율 1,2위를 차지하는 전략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201410월 행장으로 취임하시면서진선진미盡善盡美)’를말씀하시고외형경쟁보다는 ‘4S경영을강조하셨다지요?

우선 4S는 저의 독창적인 생각이라기보다는 앞서 말씀 드린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선도기업 지위가 약화된 씨티그룹의 생존전략으로 선택과 집중을 하면서 전세계 직원들과 공감하기 위한 그룹의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수익을 위해 단기외형 성장을 추구하지 않으며(smaller), 고객과 거래할 때 쉽고 간단히 이해할 수있는 상을 제공하며(simpler), 신뢰를 우선으로 하고 회사를 튼튼하게 만들어(stronger) 주주에게 보상하며, 금융시스

템 안정(safer)에 기여한다는 각오로 저는 해석하고 공유하였습니다. “진선진미는 논어에 나오는 구절로아름다운 좋은 결과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 동기나 과정도 선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금융인으로서 실적과 승진을 위해 고객에게 자기도 잘 모르는 금융상품을 고객의 필요에 맞지도 않는데 소개하고 거래하였다면 처음에는 모두 운 좋게 지날 수 있지만 결국은 고객에게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고객의 재산을 관리하는 금융인으로서 꼭 필요한 경구로 생각합니다. 더 넓게 보면, 인생에서 여러 선택과 결정의 시점에 나는 스스로 떳떳한 방법을 선택을 하였는가를 한번씩 반추해 볼 만 합니다.

 

취임 초기부터 디지털 및 모바일 뱅킹 투자 확대를 추진하셨습니다. 그 결과는?

나름대로 은행이 지속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경쟁자보다 일찍 마련하였다고 자평합니다. 디지털 전환과 모바일 뱅킹은 당시 금융소비자의 거래 채널 선호도 데이터를 보면 거부할 수 없는 추세였지만 다른 은행들은 조직의 타성과 과거경로 의존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2017년 은행장을 중임하면서 과거

의 관행에서 과감히 벗어나 많은 지점들을 통합하고 모바일로 간다고 선언했습니다. 이 때 외부에서뿐 아니라 내부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상당했습니다만 코로나 팬데믹 이후 현재는 비대면 거래가 일반화되고 비대면 회의나 강의가 위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이 있습니다. 저를 믿고 큰 전환작업을 같이 수행해 준 당시의 임직원분들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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