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3호] 감사일기 / 김기덕(상학 61학번, 전 동부건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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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반숙자 씨의‘미루지 않는 사랑’이란 책을 마저 읽었다.

그는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여류수필가로, 청주교구 주보에 묵상 글을 연재했던 신앙심 깊은 가톨릭 신자이다. 그는 이미 여러 권의 책을 낸 문인으로, 청주 근교에서 농촌생활을 하면서 건져 올리는 소소한 소재로 쓴 그의 글은, 아차산 기슭에서 전원의 기쁨을 노래한 고 박완서의 글과 많이 닮아있다. 박완서 소설가도 가톨릭신자로서 서울주보에 한동안 묵상 글을 올렸지만, 박완서는 소설가이고 반숙자는 수필가로서 글 쓰는 필체가 아무래도 좀 다른 것 외에, 박완서는 탁월한 소설가로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문학성에 더 중점을 두고, 반면에 반숙자는 박완서에 비해 신앙심과 영성적인 면을 좀 더 강조한 것이 두 분의 또 다른 점이 아닌가하고 내 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초등교사 출신으로 80대 초반인 그는 농촌에서 농사를 손수 지어 얻은 소출을 이웃과 함께 나누며 마음의 기쁨을 얻고 건강을 지키고 있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의 시골 분이시다. 그럼에도 그 사소한 일상에서 주님의 은혜와 감사를 온몸으로 느낀 맑고 티 없는 감정을 타고난 글 솜씨로 글로 옮겨놓은 것에 대하여, 허울뿐인 신자이지만 그래도 신자는 신자인데다가 수필가인 체하는 나에게는 그 하나하나가 더 가슴에 와 닿는다.


비슷비슷한 내용 중에 그래도 내가 잘 몰랐던 신앙적인 것은 인간의 죽음 이후의 문제였다.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며 생전에 악행을 많이 한 사람의 영혼은 바로 지옥으로 떨어지고, 선행을 많이 한 사람은 막바로 하늘나라로 들어가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것과, 또 하나는 연옥에 관한 것이었다. 생전에 크고 작은 잘못을 하며 산 사람은 그 잘못과 죄를 연옥에서 다 보속(補贖)해야 하고, 한편 남은 가족들과 친지들의 간절한 기도로 그 보속을 다 마친 후에야 하늘나라에 올라간다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신앙의 배경은 그사이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기는 하였으므로, 4년여전 아내 홍 안젤라가 하룻밤 사이 말 한마디 없이 우리 곁을 떠난 후, 딸 아들에게 너희들 평생 동안 엄마 위해 위령미사 드리라고 당부하고 나서는 남편인 내 나름대로 할 도리는 다 했다고 자위하고 있던 중에, 이 책에서 그 내용을 자세히 읽고 아내한테 큰 죄를 지은 듯싶은 마음이 언뜻 들었다.


물론 매주 말 미사 때마다 영성체 끝난 후 기도 순서 때, 언제나 제일 먼저 안젤라의 하늘나라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기도드리고나서, ‘잘가라’고 인사 한마디 못하고 떠나 보낸 우리 부부 사이에 나마저 언젠가 이 지구를 떠나면, 하늘나라에서 재회의 기쁨을 가질 수 있도록 간절히 올리는 기도는 한번도 빠짐없이 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책을 읽고 나서는 짧은 식전 기도 때 아내의 하늘나라에서의 안복(安福)을 기도 드린 며칠 후 지난밤에는 하룻밤 사이 꿈에 아내를 두 번이나 보았는데, 첫 번째 꿈에 본 아내는 사후 얼마되지 않아 보였던 쌀쌀맞은 모습이었으나, 새벽녘에 나타난 아내는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화장도 예쁘게 하여 환히 나한테 웃는 모습을 보여주어 너무 기쁜 나머지, 깨고 보니 허망한 꿈이었다. 그사이 오랫동안 꿈에서조차 보지 못한 안젤라의 모습을 하룻밤 사이 두 번이나 보면서 신앙인으로서 기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반 수필가의 책 후반부에는 감사기도에 대해 수많은 예를 들어가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신심이 깊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전에도 여러 번 듣고서도, 나같이 명색뿐인 신자이며 언제나 바쁜 척 하는 나에게는 별로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무심하였으나, 이제 나이도 산수(傘壽, 80세)를 눈앞에 두고, 금년 들어 매주 말 성당에서 영어 성경공부를 하고 있는 요즘 상황에서,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나름대로 감사 거리를 찾아 감사기도를 올리고, 가급적 짧게나마 감사 일기도 써 보아야 되겠다는 마음이 한 가닥 피어 올랐다.


이렇게 함으로써 더욱 원숙한 노후의 삶을 살 수 있고, 이제 언제 나에게 닥칠지 모르는 이 별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을 평화로운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는 준비의 하나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감사 일기 하나 가지고 거창하게 다짐해 본다.〈 2019.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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