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3호] 머니 할과 윤여정, 한류의 경제 경쟁력 / 홍찬선(경제 82학번, 시인, 전 머니투데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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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 할.

얼마 전 읽은 동시에 나온 말이다. 유치원에서 영어를 배운 손자가 자기 이름은 ‘길동 홍’이라고 하길래, 할머니는 영어로 무엇이냐고 물으니까‘머니 할’이라고 해서 재미 있었다는 내용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어권 외국인을 만나서 자기소개를 할 때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미나리>에 출연해 대한민국 영화사상 처음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은 달랐다. 그는 이름을 윤여정이라고 말하면서, 유창한 영어로 서양인들이 발음하기 힘든 자기 이름을 정확하게 발음해 주어 감사하다고 해 수많은 서양인들의 박수갈채를 이끌어냈다.

‘머니 할’과‘윤여정’은 한글과 대한민국의 위상이 엄청나게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4대 강국의 대사를 지낸 한 외교관도 “손녀 손자들이 홍콩에 사는데, 외국인 벗들이 손자 손녀의 이름을 한국식으로 정확하게 발음하고, 한국에 대해 아는 게 있는 것에 긍지를 느낀다”고 소개했다. 방탄소년단(BTS)과 오징어게임 등으로 전 세계에 부는 한류열풍 덕분이다.


2018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로머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는 생산의 3요소로 사람(People), 아이디어(Ideas), 재료(Things)를 제시했다. 아담스미스 이후 250여년 동안 상식이었던 노동·자본·토지와 달리,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실행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본과 토지 등은 별다른 문제없이 조달할 수 있는 시대임을 지적한 것이다. 21세기는‘창의력 시대’라는 말이다.


실제로 한 사람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코비드19 바이러스를 물리치기 위한 백신 및 치료제 개발을 위해 RNA 전사체(轉寫體)를 세계 최초로 분석해 낸 김빛내리 서울대 석좌교수, 재일 한국인의 역사를 영어소설로 재현해 낸 이민진 소설가, 강제로 끌려간 일본군 위안부를‘합의에 의한 매춘’이라고 망발을 해댄 램지어 교수를 혼내 준 석지영 교수 등은 사람과 아이디어의 중요성을 보여주었다.


한국사람들은 잘 모르는 C4J0K21O19라는 말이 있다. 세종대왕이 왕위에 있을 때인 1418년부터 1450년까지 32년 동안 당시 세계적 수준의 과학기술 개발건수를 비교했더니, 중국(China)이 4건, 일본(Japan)은 0건, 다른나라(Other)들이 19건인데, 한국(Korea,조선)은 21건이었다는 뜻. 일본의 이토준타로라는 학자가 쓴『과학기술의 역사』(1983)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김구 주석은 74년 전에 <나의 소원>에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며 문화강국론을 펼쳤다.

한국이 멋진 역사 자산을 갖고 있음을 인식하고 내놓은 혜안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은 아직도 그런 문화DNA를 경제경쟁력으로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다. 외국 것을 떠받들고 우리 것은 깔보는 부외자멸(附外自蔑)적 인식 때문이다.


100년쯤 전에 그람시는“옛것이 죽어가고 새것은 태어나지 않을 때 위기가 발생한다. 이런 공백기에는 온갖 방식으로 치명적인 부패 증상이 나타난다”고 갈파했다. 일제강점기의 수탈과 6.25전쟁의 폐허를 이겨내고 공업화와 민주화를 기적적으로 달성한 한국이 지금 겪고 있는 위기상황을 표현한 것처럼 생생하다.

지나간 일을 기억하는 것은 한풀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밝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주춧돌로 삼기 위해서다. 석 달 앞으로 다가온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화를 경제경쟁력으로 삼아 대한민국의 품격을 높일 수 있는 대통령이 선출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아리랑·판소리·탈춤·민화 등을 세계적 문화 및 경제상품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장인(匠人) 등에게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 정부의 역할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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