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5호] 세기의 보물을 찾아서⑧ 대영박물관의 Roseta Stone / 한영국(경제 50학번, 금토상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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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영국 런던에 있는 대영박물관과 그 안에 소장된 로제타 스톤(Roseta Stone)을 찾아가보기로 한다.
대영박물관은 1753년에 지어진, 처음에는 아주 작은 박물관이었지만 지금은 세계적인 초대형 박물관이 되었다. 영국이 세력이 막강해지면서 다른 나라에서 가져온 전리품과 약탈물을 수장(守藏)하기 위해 규모를 점점 키웠기 때문이다.


대영박물관의 기원은 당시 의사이자 과학자였던 한스 슬로언(1660~1753) 경(卿)의 유언에서 시작된다. 슬로언경은 아주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과학에 관심이 많았고, 나중에는 의학과 약학에 몰두했다. 런던에서 의학을 공부하여 의사가 되었으며, 궁중의 왕실 의사로서도 이름이 높았다. 그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자메이카 주지사 주치의로 자메이카에 건너갔는데 거기서 엄청난 재력을 가진 과부와 결혼하여 부자가 되었다. 그 때부터 현지 토착식물에 대해 연구하고 나아가 식물학 자료와 고대 로마시대의 동전, 메달, 골동품, 예술 작품, 도서, 인쇄물 등 역사적, 문화적 물품 약 8만점을 수집했다. 그리고는 그의 방대한 수집품이 누구에게나 공개될 수 있도록 당시 영국의 국왕 조지 2세에게 기증한다고 유언했다. 1753년 그가 세상을 떠나자 영국 의회에서는 그의 기증물을 관리하기 위해 “영국박물관법”을 제정하여 박물관을 짓고 슬로언 경의 기증품을 수장(守藏)했다. 이 박물관은 1759년에 개관했는데 한 건물 안에 전시장과 도서관을 넣어 고대 유물과 관련 도서를 함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영국박물관을 흔히 대영박물관이라고 칭한다. 당시 슬로언경이 남긴 유물만 해도 8만여 점이었는데 그 후 후설하는 로제타 스톤을 비롯하여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 중국, 인도 등지에서 약탈해온 물품들을 계속 유입시킨 결과 오늘날에는 소장 품목이 800만 점이 넘는다고 한다. 영국이 가장 번성하였을 때에는 오대양 육대주의 온 세계를 누비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일컬어 왔음을 이 박물관이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이 대영박물관에는 엄청난 큰 규모의 이집트관에서는 미이라 같은 이집트 고유의 유물을 볼 수 있고, 그리스관에서는 파르테논 신전에서 뜯어온 장식물(엘긴 마블)들과 기둥 장식을 볼 수 있다. 1997년에는 한국 전시실도 설치되었다. 여기에는 250여 점의 도자기와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데 7~8세기 통일신라시대 불상, 13세기 고려청자, 조선 후기 백자, 18세기 김홍도(金弘道)의 <풍속도첩(風俗圖帖)> 등이 진열되어 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대영제국의 아프리카 침략, 인도를 거쳐 청나라 시대의 중국, 이조 말기의 한국, 일본 등도 다 누비고 다닐 실력이 있어서일 것이다. 세계지도를 보면 남아메리카 최남단 아르헨티나의 끝 해협이 드레이크(Drake)해협이라고 되어 있다. 왜일까?

이는 영국 해군의 “프랑시스 드레이크” 제독(1540~1596)이 스페인의 무적함대(The Invencible Armada)를 격파하며 세계를 누비고 다녔던 결과다. 그리고 호레이쇼 넬슨 제독(1758~1805)은 1805년 스페인과 프랑스의 연합 함대를 트라팔가르 해전서 격파한 명장으로서 그의 전술은 조선의 영웅 이순신 장군과 더불어 지금도 각국의 해군사관학교에서 전술 교본이 되고 있다. 이와 같이 국운이 왕성할 때의 영국 군대, 그들이 세계를 누비며 수집 또는 약탈해 나라에 바친 물품들이 오늘날의 대영박물관의 밑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예를 든다면 끝이 없을 것이고, 그 옛날 문화재를 빼앗긴 나라들은 영국에 대한 원망이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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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약탈물 중에서 필자는 특별히 저 유명한 로제타 스톤(Roseta Stone)을 골라서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대영박물관의 800만개에 달하는 전시품 중에서 단 한 가지라도 머리에 넣어 두고 그 유물이 왜 명품인가를 살펴 보는 것도 삶에 좋은 거름이 되지 않을까 한다.
영국박물관이 건립되고 40여년이 지난 1799년 나폴레옹 군이 이집트 원정을 나갔을 때 나일강 서쪽 지방 로제타 마을에서 한 병사가 이상하게 생긴 돌을 발견했다. 이 돌은 높이 125cm, 너비 70cm, 두께 28cm의 보잘것없는 돌비석이었다. 돌비석에는 세가지 종류의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윗부분에는 이집트의 고대상형문자, 가운데에는 이집트의 민용(民用)문자, 맨 아래쪽에는 고대 그리스 문자였다.


나폴레옹은 이 비석의 심상치 않음을 간파하고 즉각 먹물을 칠해 탁본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유럽 각국에 있는 유명 학자들에게 배포하여 이 문장을 해독하도록 하였다. 그 때 이집트의 고대 상형문자가 해독되지 못했으나 이 비석을 매우 소중하게 보관하도록 하였다. 나폴레옹은 어느 독재자들과 달리 전쟁 중에도 책을 여러 권 갖고 다니면서 독서를 했다는 지적(知的)인 일면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 후 이 비석은 1801년 프랑스가 이집트 아부키르 전투에서 영국에 패배한 후 평화조약의 대가로 영국에 넘겨주어 대영박물관에 소장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후에도 이 상형문자는 아무도 해독해내지 못하다가 1822년에 프랑스의 언어학자인“샹 폴리옹(Jean FrancoiseChampollion)”이 그 전모를 밝혀냈다.

그리스어로 기록된 문장은 기원전 196
년 당시 파라오(최고 통치자)였던 열세살의 프톨레마이오스 5세의 왕실의 제례에 관한 언급이었는데, 샹 폴리옹은 이를 연구하다가 몇몇 상형문자가 프톨레마이오스와 클레오파트라를 의미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어서 27개의 파라오의 이름들을 해독함으로써 비로서 이집트 상형문장의 전모를 밝혀 냈는데 그 내용은 람세스 2세의 업적을 찬양하는 글이었다고 한다.


샹 폴리옹의 연구의 결과로 이집트 상형문자에 대한 해석의 길이 열렸고, 고고학적인 유물과 기념비 및 새로 발견되는 석판의 연대와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빛나는 이정표를 세운 것이다. 그리하여 이 보잘것없었던 로제타 스톤이 비로소 세계의 각광을 받게 되어 오늘날의 명물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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