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5호] 60년 전 겪었던 링 반데룽(Ring Wanderung)의 추억 / 변영일(무역 61학번, 전 한얼아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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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꼭 60년 전, 서울상대 산악회가 설악산을 등반하다가 “링반데룽”을 겪은 일이 있다. 링반데룽은 Ring(環狀)과 Wanderung(彷徨)가 합쳐진 등산용어다. 야간이나 악천후로 인해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등산할 때 광대한 지역을 곧바로 오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원을 그리며 같은 곳을 돌고 있는 현상을 말한다. 등산가들이 가장 끔찍해 하는 위험한 상황이다. 오늘은 서울상대 동문들께 그 경험담을 털어놓고자 한다.


서울상대 산악회는 그 해에 나를 포함한 2학년생 4명과 1학년생 5명이 모여 만들어졌다. 평소 함께 산을 오르고, 우이암, 주봉 등 바위도 같이 타던 동기생 김관길과 뜻이 맞아 시작되었다. 그날 새벽 일찍 일어나 수건으로 쌀을 비벼 씻고, 식탁 위에 펴 돌을 골라내고, 작은 자루에 넣어 다시 비닐로 쌌다. 여기에 꽁치 통조림과 간장, 된장, 김치 같은 반찬을 잘싸넣고, 버너와 항고“(   )”의 일본식 발음, 군용 밥통), 코펠, 미군용 식기(옛날에는 미군용 식기를 주로 썼다), 칼, 수저, 슬리핑 백, 판초 등등을 배낭에 잔뜩 집어 넣었다. 그 배낭에 자일과 피켈을 매달고 낑낑대며 종로 5가 시외버스 정거장으로 갔다. 정류장에는 김관길이 먼저 나와 있었고, 이어 김종국 등 1학년 3명이 도착하여 4시반에 출발하는 속초, 설악행 버스를 탔다. 서울상대 산악회의 첫 원정, 설악산 등반을 떠나는 것이었다.


덜컹대며 새벽길을 달린 버스가 아침 8시에 홍천읍 정거장에 정차했다. 거기서 아침을 먹고 출발하여 10시 반쯤 설악산 입구 남교리에 도착했다. 우리들은 남교리에서 백담사 코스가 아닌 12선녀탕 계곡을 올라 흑선동 계곡을 지나 마등령에서 비박(bivouac)을 하고 중청봉을 거처 대청봉을 오르기로 했다.
그 때 날씨가 꾸물 꾸물하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쯤 지나면서 빗줄기가 굵어지고, 계곡 물이 불어 길을 갈 수 없는 긴급한 사태가 벌어졌다. 안벽을 올라 물을 피해 가다 보니 날이 어둡기 시작했다. 쏟아져 내리는 계곡물을 피해 비박할 만한 곳을 찾다가 산비탈 중턱에 검게 입을 벌린 자연 굴을 발견했다. 주변의 안전을 확인 후, 우리 일행 5명은 비탈진 반 굴에 서로 의지하며 건량(군용 건빵)에 물을 끓여 나누어 마시고는 판초로 몸을 덮고 비박에 들어갔다. 다음날 이른 아침 일어나보니 비는 그치고 날씨가 반짝 개였다. 지도를 보며 산을 올라 능선을 넘어 비탈을 내려오니 집이 몇 채 보이기에 반갑게 내려가 위치를 물었다. 그런데 그 곳은 놀랍게도 우리가 산행을 출발한 곳에서 500여 미터도 안되는 곳, 아니오리골 입구란다. 하도 험해 다시는 오지 않는다 하여 아니오리골이란다. 결국 산을 오르고 능선을 잠시 돌아 다시 원점으로 내려온 등산 중 가장 초보적 조난, 링반데룽을 한 것이다. 여담이지만 이날 조난을 당하여 산 굴에서 비박할 때 마침 산행 중이던 이화여대 산학회 회원들을 도와 준 일이 있다. 그 인연으로 후에 다시 만나서 합동 산행을 하자고 약속했는데 당시 이화여대 산악회들이 3학년이라고 하기에 우리들도 3학년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우리가 1,2학년이라고 하면 관심이 떨어질 것 같아서였다. 그 후 이 거짓말이 들통이 날까봐 만남을 피했더니 얼마 후 어찌 알았는지 상대신문사로 전화가 왔다.(나는 그 당시 상대신문 기자였고, 다음 해에는 상대신문 주간을 맡았다.) 다행히 그 전화를 내가 받아서 그런 학생 없다고 잡아 떼었는데, 그렇게 해서 여학생들과의 합동산행은 없던 일이 되어 버렸었다.


또 그날 우리들이 조난당한 일을 한국 산악회에 잘 아는 이사에게 알렸더니 한국산악회 주관으로 그 일대에 안전 표시판을 설치하게 되었다. 실제 작업은 김관길과 나 둘이 했는데 내설악 신흥사에서 와선대-비선대-괴면암-비룡폭포-권금성-마등령-토왕성폭포 각 지점간 거리를 자일로 재고, 그 거리를 표시판에 기록하여 각 해당 장소에 설치했다. 이 표시판들은 유한양행이 제공해 준 것으로, 안전성을 체크하여 주의, 또는 출입금지까지 표시한 설악산 최초의 구간 안내판이 되었다.


그 때 마침 신흥사 계곡 변에 수도사대(현 세종대학교) 섬머스쿨이 있어 다른 학생들도 편하게 이용이 가능했는데, 맡은 일도 다 끝나갈 즈음 졸업 여행을 온 서울 문리대 졸업반 학생들이 내설악 관광을 와 있었다. 이들이 토왕성 폭포 앞을 지날때 입구길이 위험하여‘출입금지’라고 표시한 표시판을 잘 보지 못하고 접근하려다가 낙석으로 사고가 발생했다. 우리가 연락을 받고 급히 출동해 보니 한 여학생(미스코리아였던 불문과 오현주양)이 낙석에 귀를 다치고 발목을 삐어 있었다. 우리는 그 여학생을 응급조치를 해주고, 나머지 경상자들도 응급처치하여 안전하게 구조했다. 마침 우리도 임무가 끝나 귀경하려던 차에 문리대 학생들도 모두 급히 귀경하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덕분에 우리도 그 버스에 편승하여 편하게 서울로 돌아온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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